∎ 러시아 정교회 한국선교회는 1897년 조선 주재 러시아 부영사 대행 폴랴놉스키(З.М. Поляновский)의 성직자 파송 요청에 따라 창설되었음.
∎ 1899년 중순, 2명의 러시아인 선교사가 한국에 입국하였으며 1890년 2월 선교회장 흐리산프 셋콥스키(Хрисанф Щетковский) 대수도사제가 서울에 도착, 1903년에 한국 최초의 정교회 성당인 성 니콜라스 성당을 정동에 설립하고 본격적인 선교를 시작함.
∎ 1904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자 일본은 주한 러시아인 추방령을 내림. 이로 인해 성직자들이 러시아로 돌아가게 되며 선교회의 활동은 정지되었으나 전쟁 이후 1906년에 재개되었음.
∎ 신임 선교회장 파벨 이바놉스키(Павел Ивановский) 대수도사제 재임기간인 1906~1912년 사이 성찬예배 본문의 한국어 완역, 4곳의 지방선교지부와 미션스쿨의 신설 및 총 322명의 영세가 이루어졌으며 최초의 조선인 성직자 요한 강탁 신부와 두 번째 루카 김희준 신부의 서품이 이루어짐.
∎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조선선교회는 대위기를 맞이함.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정부의 수립으로 선교회에 자금지원과 선교사 파송이 중단되며 지방 선교지부와 미션스쿨들은 차례로 문을 닫음. 이후 조선선교회의 관할권은 1923년 일본대주교에게 이양됨.
∎ 한국전쟁 동안 한국의 유일한 정교 사제였던 김의한 신부가 납북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으나, 전후 그리스계 종군 사제들와 선교 사제들을 중심으로 한 계속된 복구 노력으로 1968년에는 아현동에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 건립됨.
∎ 한편, 한국의 정교회는 교회 조직상 소속이 확실하지 않았음. 일본 정교회에서 한국을 관리하고 있었으나, 한국인들의 반일감정 등으로 국내 신도들은 일본 정교회로부터 이탈하기를 원함. 마침내 1956년, 신도총회에서 관할권을 그리스계 정교회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청 산하로 옮기기로 결정하여 한국 정교회의 ‘그리스 시대’가 시작됨.
∎ 2004년 6월 20일에는 한국 교구가 독자적 자치권을 획득, 수도대교구(관구)로서 한국정교회 대교구가 탄생함.
∎ 2018년, 콘스탄티노플 정교회가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독립 교회로 인정하고 러시아 정교회의 간섭을 차단하려 하자 러시아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개별 관할 지역 개입에 반발하며 콘스탄티노플과의 단절을 결의했음.
∎ 2018년 11월 23일 모스크바 총대교구 대외교회관계부장 일라리온 알페예프(Иларион Алфеев)는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서 개최한 원탁토론에서 콘스탄티노플 교회와 러시아 교회가 교류를 단절했음을 밝히고, 한국에 러시아인 사제를 파송할 것을 선포함.
∎ 2018년 12월26일 러시아 정교회는 올레그 넬린(Олег Нелин) 대사제를 한국으로 파송함.
∎ 이전까지는 콘스탄티노플 산하 한국 정교회 대교구는 슬라브계 신도들을 위해 교회 내에서 따로 공동체를 사목할 수 있게 하고 있었음. 그러나 정교회 분리 이후로 올레그 신부는 콘스탄티노플 교회를 떠난 몇몇 러시아 인들과 한국인 신도들로 사목구 공동체를 조직하여 용산구의 사립 러시아 학교 ‘루스키 돔(Русский дом)’에서 성찬예배를 거행하고 오피스텔 건물을 임대하여 그리스도 부활 성당을 차림.
∎ 또한 2019년, 한국에 러시아 정교회의 대한 교구(Корейская епархия)를 편성하였으며 용산 그리스도 부활 대성당에 테오판 김 대주교가 임당함으로서 한국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부활을 알림.
(수도사제 바울로 최지윤 신부의 <한국정교약사>)